"나도 한때, 축구선수를 꿈꾸던 작은 소년이었다" 4편
프로팀 입단, 새로운 현실과 도전
프로팀 계약 후, 나는 새로운 숙소로 이사를 했고, 구단에서 제공하는 첫 유니폼과 장비를 받았다.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여기서는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었다. 이제는 결과로 평가받는 '프로선수'였다.
첫 팀 훈련은 낯설고 무거웠다. 몸싸움의 강도, 패스의 속도, 경기 운영의 템포까지 모든 게 대학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나와 같은 포지션의 경쟁자들은 이미 수년간 프로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나는 더 일찍 구장에 도착했고, 훈련이 끝난 후에도 홀로 남아 개인 훈련을 이어갔다.
데뷔전을 치르기 전까지, 수많은 연습 경기와 팀 전술 훈련이 반복됐다.
몸 상태도 끌어올리고 있었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무릎 통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강도 높은 반복 훈련 속에서, 무릎 주변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뻣뻣한 느낌이 강해졌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예전 부상 부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훈련이 누적된 것이 원인이었다.
담당 트레이너는 휴식과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지만, 나는 다가오는 데뷔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택은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훈련에 임하면서도 부상 부위를 신경 쓰고, 테이핑과 보강 훈련을 병행했다.
그 와중에도 팀 내 경쟁은 치열했다. 부상이 있는 상태에서의 실수는 곧 기회를 놓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즌 중반을 앞두고 기회가 찾아왔다. 팀의 주전 미드필더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감독님은 로테이션 멤버였던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날은 홈경기였고, 팬들의 응원 속에서 나는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긴장했지만, 경기장에 들어서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얼마나 준비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초반, 몇 차례 실수를 했지만 빠르게 집중력을 되찾았다. 중원에서 볼을 끊어내고, 빠르게 측면으로 연결하는 내 플레이가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에는 내가 전방 압박으로 유도한 볼 탈취가 득점으로 연결되며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었다.
경기 후, 감독님은 내게 짧게 말했다.
“오늘 잘했다. 이제부터는 너도 이 팀의 중심이다.”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을 넘어, 내가 진짜 ‘프로’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그 이후로도 나는 수많은 벤치, 수많은 교체 명단, 수많은 고민과 싸워야 했다. 부상과의 싸움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인 축구선수였다.
무릎, 멈춰야만 했던 순간
그러던 중, A매치 기간이 겹치고 연습경기가 집중되는 '박싱데이' 일정이 찾아왔다.
나는 아직 팀 내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입장이었기에, 주전급 선수들이 빠진 이 시기에 기회를 잡기 위해 더욱 집중해야 했다.
감독님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나는 일주일간 3경기에 연속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버텼다. 아니, 버텨내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아차' 싶었다.
무릎이 이상하게 뜨거웠고, 움직이려고 하자 하체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부어오른 무릎을 보며 직감했다. 단순한 피로 누적이 아니라, 정말 '왔다'는 것을.
병원 진료 결과는 나의 예감을 벗어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원래의 부상 부위였던 오른쪽 무릎보다 이번엔 왼쪽 무릎이 더 심각한 상태였다.
그동안 오른쪽 무릎의 통증을 피하려다 보니,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자연스레 체중이 왼발로 쏠려 있었다.
결국 왼쪽에도 무리가 쌓이며, 양쪽 무릎 모두에 염증과 손상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일본은 외국인 선수가 병원에서 정밀하게 치료를 받기에는 여건이 쉽지 않았다. 보험 문제도 있었고, 언어 장벽도 여전했다.
결국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 처음으로 박지성 선수가 말했던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릎에 물이 차고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기압 변화로 인해 통증이 더 심해진다는 말.
나 역시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비행 중 통증은 평소보다 훨씬 심했고, 거의 하체를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정밀 검사를 받은 후, 담당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양쪽 십자인대 모두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후 재활까지는 최소 1년 반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너졌다.
운동선수로서 내 몸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1년 반이라는 공백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암담했던 날 중 하나였다.
모든 게 무너진 듯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축구 인생의 가장 깊은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끝내 내린 결단, 축구와의 작별
한 달간의 고민과 치료 속에서, 결국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팀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러 가야 했다.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1년 반이라는 재활 시간을 정말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팀은 그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내가 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불안감은 점점 커졌고, 내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갔다.
의사로부터 들은 또 다른 말은 결정에 결정타가 되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동일한 부상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선수로서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오랜 시간 바쳐온 축구였지만, 이젠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내 인생 전부였던 축구, 그리고 선수라는 이름과 작별하겠다고.
이별은 아팠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첫 번째 축구 인생은 막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는, “지도자의 길로 가기까지”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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