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 축구선수를 꿈꾸던 작은 소년이었다" 2편
일본 진출을 향한 준비
일본 에이전트 소속이 된 이후, 내 하루는 더욱 치열해졌다.
아침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팀 훈련에 참여했다. 훈련이 끝난 저녁 시간에는 따로 일본어 수업을 들으며, 밤늦게까지 언어 공부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다. 일본어 문법도 어렵고, 말 한마디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자.'
나는 스스로를 다그쳤고, 하루라도 더 빨리 일본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준비했다.
축구 실력은 물론이고, 일본 문화와 생활 방식까지 배우려 노력했다. 일본 축구 스타일, 경기를 대하는 자세, 선수들의 훈련법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렇게 매일을 버텨가며, 나는 점점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본 테스트를 향한 마지막 준비
일본 대학 테스트를 보는 기간이 정해졌다. 5월 중순, 드디어 꿈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남은 시간은 단 두 달. 나는 모든 것을 축구에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훈련 강도는 점점 높아졌고, 체력은 한계를 시험받았다. 무리한 훈련 탓에 토하는 건 기본이었고, 괜찮아졌던 무릎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오전에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두 달 동안, 나는 오로지 공 하나만 바라보며 버텨냈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 도착 그리고 첫 훈련
일본에 도착한 첫날,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 있을 훈련과 경기를 어떻게 준비할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아침이 밝았다. 식사를 마친 뒤, 가볍게 조깅을 하며 몸을 풀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 드디어 운동장으로 출발했다.
운동장에 도착해,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일본 현지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인사만큼은 당당하게 했다.
그리고 이어진 첫 훈련.
몸은 긴장했지만, 공을 다루는 순간만큼은 익숙했다. 나는 그라운드 위에서 다시 한 번 내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일본 테스트 첫 경기
아침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벼운 아침식사를 하고, 조용히 몸을 풀었다.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오늘의 움직임을 그리고 또 그렸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본 현지 선수들은 훈련과 준비운동에 한창이었다.
첫 경기는 짧은 20분 하프 매치였다. 긴장한 상태로 시작했지만, 경기를 치르며 점차 본래의 감각을 되찾았다.
경기 후 감독님은 짧게 말했다.
"좋은 움직임이었다. 내일도 기대하겠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강하게, 더 뚜렷하게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걸.
일본 테스트 두 번째 날, 충격과 깨달음
둘째 날은 2시간 동안의 훈련이었다.
컨트롤과 패스를 위주로 한 훈련이 이어졌다. 일본 축구 스타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경험해보니 충격적이었다.
훈련하는 내내,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흔들렸다.
'축구는 이렇게까지 효율적이지 못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중, 일본 감독님이 내게 한마디를 건넸다.
"공은 사람보다 빠르다. 모든 축구는 공을 잡는 것부터 시작된다."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그동안 이 기본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 깨닫게 되었다.
기본기. 너무 당연해서 무심했던 것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그 기본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구나. 다시 처음부터, 기본부터 쌓아야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다시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일본 테스트 세 번째 날, 기회는 기본기에서 시작된다
세 번째 날, 몸을 풀고 자체 경기를 치렀다.
일본은 대학 리그 안에서도 등급이 명확히 나뉘어 있었다. 같은 팀 소속이더라도, 실력에 따라 1군과 2군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운영되었다.
나는 2군팀에서 첫 스타트를 끊었다.
경기를 시작하자, 일본팀 특유의 스타일이 곧바로 드러났다. 빠른 템포, 조직적인 압박, 그리고 공 없는 움직임까지 모든 흐름이 체계적이고 방향성이 뚜렷했다.
놀라웠던 건, 그 속에서도 각 선수들이 얼마나 기본기에 충실한지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첫 터치, 패스의 타이밍, 공 없이 움직이는 위치 선정까지, 모든 평가의 기준은 ‘기본기’에 있었다.
나는 미드필더로 경기에 나섰다. 초반에는 빠른 전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경기의 리듬을 이해하면서 감을 잡기 시작했다.
공을 잡기 전 시야를 미리 확보하고, 논스톱 패스로 수비가 붙기 전에 공을 다음 위치로 전달했다. 그렇게 공을 오래 끌지 않고 풀어가다 보니 체력 소모도 줄었고, 더 넓게 경기장을 볼 수 있었다.
경기 내내 공을 다루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공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그날 실감했다.
전반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코치진의 콜이 들려왔다.
“○○, 1군으로 교체 투입!”
놀랍게도 나는 1군 라인업에 콜업되어 후반전에 투입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나 자신을 증명해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내가 조금씩 일본이라는 무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최종 테스트 후, 귀국 그리고 결과
며칠 간의 테스트가 끝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일본에서의 훈련과 경기 장면들로 가득했다.
내가 해낸 플레이, 놓친 장면, 감독님과 코치진의 반응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충분했을까?'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 전달됐을까?'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도 조용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일본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일본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심장이 터질 듯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액 장학 혜택까지 제공된다는 겹경사의 소식이었다.
그 순간,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안도, 기쁨, 그리고 벅차오르는 눈물.
내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받는 순간이었다.
힘들었던 훈련, 무릎 통증을 참고 견뎌낸 시간, 일본어를 배우며 늦은 밤까지 잠을 줄여가며 준비했던 모든 날들이 하나의 결실로 다가왔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진짜 내 축구 인생이 펼쳐질 무대.
나는 그 무대를 향해, 두려움보다 설렘을 안고 다시 축구화를 신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은 일본에서의 대학생활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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